한국 의료 데이터 상호운용성 현황 — FHIR, DICOM, 그리고 갈 길
들어가며
회사에서 HL7 FHIR이랑 DICOM을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쪽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. 의료정보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국내에서는 꽤 비주류인데, 파보면 파볼수록 재밌다. 그리고 파보면 파볼수록 한국이 겉보기와 다르게 꽤 뒤처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.
한국 EMR 도입률이 92%라고 하면 뭔가 선진적인 느낌이 나는데, 실상은 좀 다르다. CT 찍은 걸 다른 병원에 보내려면 아직도 CD를 굽는다.
이 글에서는 HL7 FHIR이랑 DICOM을 중심으로 한국 의료 데이터 상호운용성이 어디쯤 와 있는지 정리해본다.
1. 현재 한국의 의료 데이터 표준화 상태
EMR: 숫자만 보면 좋은데
EMR 도입률 92.1%1. OECD 평균보다 높다. 근데 이 숫자가 좀 함정이다.
- 의원급은 유비케어(의사랑), 비트컴퓨터(비트닉스), 전능아이티(아담스) 같은 3개사가 과점하고 있고1
- 3차 병원은 각자 자체 개발한 시스템을 쓴다
- 각 시스템의 DB 스키마, API, 데이터 포맷이 전부 다르다
그러니까 EMR 도입률 92%라는 건 "전산화율 92%"이지 "상호운용성 92%"가 아니다.
DICOM: 표준은 있는데 지키질 않아
DICOM은 의료영상 쪽 국제 표준인데, 이론상으로는 다 채택하고 있다. 근데 현실은:
- PACS 벤더마다 DICOM 표준을 알아서 변형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2
- 기관 간 전송할 때 DICOM 태그 불일치로 오류가 터진다
- 영상 교류 방식이 CD/DVD/USB 복사 아니면 1:1 전송이 전부다
- 게이트웨이, 라우팅 같은 시스템 레벨 표준도 제대로 없다
대한영상의학회에서 LOINC, SNOMED CT 매핑 사업을 하고 있긴 한데 아직 시범 단계다2.
HL7 FHIR: 이제 막 시작한 수준
2020년 기준 3차 병원 FHIR 채택률이 **10%**였다. CDA도 21%3. 2023년에 KR Core(한국형 FHIR 프로파일)가 나오면서4 좀 나아지고 있긴 한데, 아직 갈 길이 멀다.
2. 정부의 대응: 건강정보 고속도로
2023년부터 정부가 **"건강정보 고속도로"**라는 걸 밀고 있다5. 방향 자체는 맞다고 본다.
주요 내용
- HL7 FHIR R4 기반 KR Core 전송 표준 채택5
- 환자정보, 진단, 처방, 검사, 영상 등 12개 항목 표준화6
- "나의건강기록" 앱으로 환자가 직접 자기 데이터 열람 가능7
2025년 현재 어디까지 왔나
한계
- EMR 인증제의 상호운용성 요구사항 10개 항목이 전부 선택사항이다9. 의무가 아니라 권장.
- 참여 기관이 전체 의료기관 수 대비 아직 소수
- FHIR 리소스를 IPS(International Patient Summary)로 변환하는 워크플로우도 아직 확립이 안 됐다10
방향은 맞는데 속도가 느리고 강제성이 없다.
3. 미국과의 격차
미국은 21st Century Cures Act로 아예 다른 접근을 했다11.
| 항목 | 미국 | 한국 |
|---|---|---|
| FHIR 채택 | 법적 의무 (ONC Final Rule)11 | 권장/선택 |
| API 공개 | 필수 (환자 데이터 접근 API)11 | 건강정보 고속도로 한정 |
| Information Blocking | 금지 (위반 시 제재)11 | 규정 없음 |
| 시행 시점 | 2023.12.31 전면 시행 | 2025년 점진적 확대 중 |
| EMR 인증 | FHIR API 지원 필수 | 상호운용성 항목 전부 선택9 |
핵심 차이는 강제성이다12. 미국은 "FHIR API 안 만들면 인증 못 받고, 데이터 막으면 제재한다"는 구조다. 한국은 아직 "해주시면 좋겠습니다" 단계.
4. 왜 이렇게 됐을까
이해관계 충돌
- EMR 벤더 입장에서는 표준화 = 고객 이탈 가능성이다. 락인 전략에 역행하니까.
- 대형 병원은 자체 시스템에 이미 돈을 많이 쏟았고, 데이터 공유할 인센티브도 없다.
- 정부는 의료계 반발이 무서우니까 강제보다 권장 기조로 간다.
인력 부족
HL7 FHIR이랑 DICOM을 둘 다 알고, EMR 시스템이랑 연동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극도로 부족하다6. 의료정보학 자체가 국내에서 비주류 분야이고, 의료 IT 인력 대부분은 기존 시스템 유지보수에 투입된다.
DICOM-FHIR 브릿지의 부재
의료영상(DICOM)이랑 임상 데이터(FHIR)는 각각 다른 표준 생태계에서 발전해왔다. 이 둘을 연결하는 DICOMweb ↔ FHIR ImagingStudy 같은 브릿지 구현이 글로벌하게도 아직 성숙하지 않은데2, 한국에서는 거의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.
5. 앞으로의 방향
단기 (2025-2027)
- 건강정보 고속도로 확산 → FHIR 기반 데이터 교류 인프라 확충
- EMR 인증제 강화 → 상호운용성 항목의 점진적 의무화 가능성
- KR Core 프로파일 성숙 + IPS 연계10
중장기 (2027-2030)
- FHIR 의무화: 미국 모델 참고한 법적 강제 가능성
- DICOM-FHIR 통합: 영상 데이터까지 포함하는 통합 상호운용성 프레임워크
- AI 파이프라인 연동: 표준화된 데이터 위에 AI 진단 보조 시스템 구축
마치며
한국 의료 IT는 "전산화"는 달성했는데 "상호운용성"은 아직 초입이다. 건강정보 고속도로랑 KR Core FHIR은 방향이 맞다. 근데 미국처럼 강제성을 안 주면 빠르게 바뀌긴 어려울 것 같다.